전시 소개 ABOUT THE EXHIBITION
페리지갤러리는 35세 이하 젊은 작가에 주목하는 기획전 프로그램 'Perigee Unfold'의 2026년 전시로 김윤서, 박민하, 박선호 작가가 참여하는 《Palm to Palm(팜 투 팜)》을 개최한다.
《Palm to Palm》은 환상과도 같은 믿음을 경유해 저마다의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기술(technics)에 주목한다. 믿음은 일종의 약속이다. '믿는다'는 마음에 담긴 가능성과 단단함은 개인과 집단, 나아가 세계의 구조 속에서 우리의 삶과 사회를 일군다. 전시가 바라보는 리얼리티란 선명히 포착하거나 재현할 수 없는 실재(Real) 대신, 미술이 만들어 보여줄 수 있는 지표로서의 리얼리티를 가리킨다. 이처럼 믿음을 매개로 하는 기술은 현실에 닿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때문에 환상이 마모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은 곧 현실을 지키는 일에 다름 아니다. 김윤서, 박민하, 박선호는 엽서와 기계 번역의 오류를 해부하며 먼 시대를 추적하거나, 타인의 빈집을 촬영하며 소유와 점유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고, 별빛을 기록한 유리건판(Glass plate) 사진과 이를 다루었던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각각의 이미지는 끊임없는 이행 속에서, 파편화된 관찰을 통해 저마다의 결손을 끌어안는다.
김윤서는 『만주국의 해부』(1932)가 품은 유토피아적 시선과 낙관이 끝난 시점에서, 해부의 재연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긴 다리의 악몽〉(2026)은 '만철(滿鐵,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발행된 엽서를 접사한 망점 이미지와 그 한자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인 편방의 의미를 분해하는 말들로 시작된다. 교차하여 등장하는 사랑과 부끄러움, 슬픔에 관한 텍스트는 책 속 측량과 선동의 텍스트를 오역한 OCR 번역기의 눈으로 쓰인 언어이다. 김윤서는 이를 16세기에 만들어진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의 해부도, 비둘기를 바라보는 시선과 재차 겹쳐 보며, 역사적 외상과 문맥이 물리적·시각적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을 좇는다. 한순간 날아갈 비둘기, 읽을 수 없는 언어를 훑는 손가락은 "먼 것을 가까이 당겨 해부하고 가까운 것을 다시 멀리 흘려보내는" 영상 전체의 움직임을 함축한다. 이러한 이동과 분해의 감각은 다시금 엽서의 이미지로 수렴되고, 김윤서는 파훼된 약속들 사이에서 다른 믿음의 가능성을 묻는다. 그러나 종결이 되돌아오겠다는 의지나 새로운 탄생이 될 때(〈책장 1〉, 2024, 〈책장 2〉, 2026), 미래가 오듯, 믿음은 도래한다.
박민하는 속속들이 파헤치지 않고 내버려둔 여백에서 알 수 없음의 환상을 누린다. 종종 배타적인 감정들이 뒤엉킨 사진에는 의미와 상징 없이 구체화된 삶의 독보성이 자리한다. 파악하지 못한 채 방랑하는 과정을 긍정하는 박민하의 사진에서, 헤맴은 불가능한 것을 믿는 자의 특권이다. 이러한 믿음은 타인의 빈집을 점유하고 촬영한 시리즈 안에서 구체적인 몸을 얻는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이사를 거듭하던 작가는 애초에 소유할 수 없는 사물로 가득한 공간을 잠시 점거하기로 했다. 주인이 외출한 몇 시간 동안, 손수 재배치한 사물들은 잠시나마 정처 없이 떠돌고, 선택과 배제를 통해 구성된 공간은 그 자체로 '사진 하는' 일과 동등한 지위를 얻는다. 어둠이 밀려드는 암실에서 손을 뻗어 필름을 더듬듯, 낯선 빈집에서 점차 익숙함을 느끼는 불가사의한 시간은 강렬한 촉각적 경험이 되어 사진으로 남는다. 이때 채택된 사물은 가장 전형적인 것들—꼬인 샤워 호스, 못생긴 붙박이장, 바닥의 곰팡이—로서, 아무것도 닮지 않은 단일하고 개성적인 피사체가 된다. 사진 속 사물과 사진이 부착된 사물, 점유한 공간과 그로부터 노출된 전시장은 안팎으로 겹겹이 전도된다(〈Temporary Home〉, 2026, 〈like mould〉, 2026). 박민하의 사진에서, 많은 힘들이 굴절되어 구성되는 것으로서의 현재,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납작한 표면이 아닌 유연하고 굴곡진 덩어리를 얻는다. 환상은 밀려나오고 빨려 들어가는 필요와 좌절, 의도된 결핍에 의해 소유 없는 애착으로 나아간다.
박선호는 기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모양에 주목해 왔다. 마음은 어떤 것으로든 채워질 수 있는 빈 그릇이기보다 감추기 어렵도록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형형색색의 빛에 가깝다. 그 빛을 따라 기록했던 세계와 작가 사이의 얼룩은 〈길들인 빛〉(2026)에서 별빛을 새긴 유리건판 사진 위로, 이를 현상했던 여성 천문학자들의 삶 위로 포개어진다. 영상에서 세 개의 빛으로 이어진 의미의 망은 수평으로 미끄러지고 쌓이는 점과 선으로, 흑과 백의 이미지로 길들여진다. 이중으로 지연된 빛은 다시금 투명한 양면의 유리처럼 성근 조직의 스크린 위에 영사된다. 오래전에 출발한 빛들은 정복과 굴복을 통해 쓰인 이성의 서사가 아닌, 돌보고 길들이는 손길, 어루어 살피는 태도를 통해 비로소 이곳에 도착한다. 미처 사로잡히지 않은 빛들은 얇은 올의 스크린을 통과해 보다 먼 뒤편의 공간까지 가닿는다. 흐르는 것은 다만 빛 뿐이 아니다. 전경과 배경을 오가며 깃든 빛은 오늘날까지 전해진 사념과 열망의 아카이브이자, 질적으로 변용된 음악적 인상으로 함께 새겨진다. 공간을 휘감는 소리는 이미지의 주변이 아닌 프레임의 운율 안쪽에서 보이지 않는 시공을 메꾼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언제나 가장 작은 것"이기에, 박선호는 자신과 약하게 연결된 저 여성들과의 관계 안에서 믿음이라는 마음의 모양을 가꾼다.
손바닥을 맞댄 약속과 기도의 몸짓처럼, 작가들이 믿는 것은 손에서 손으로, 믿음에서 현실로, 먼 곳과 가까운 곳으로, 혹은 그 반대를 향하는 움직임에 있다. 무너진 낙관은 정지된 애도나 복원에 그치지 않고 기다리며 맞이할 믿음이 되고, 소유하기를 그만둔 채 낙심하지 않는 여지는 느슨한 애착을 맺는다. 시차를 두고 사라져가거나 이미 사라진 것들을 돌보는 마음은 회복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지탱해 내기도 한다. 그리하여 전시는 이들이 맞이할 복수의 결론에서 비껴선 채 지속될 환상을 지켜본다.
자료 출처: 페리지갤러리
이미지: 페리지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