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ABOUT THE EXHIBITION
RANEE SEOUL과 PS CENTER가 공동 기획한 김소희, 권지영 작가의 2인전 《POIESIS》를 8월 22일부터 9월 17일까지 선보인다.
창작은 발견과 다르다. 발견이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라면, 창작은 없던 형상을 처음으로 물질화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은 발견보다 발명에 가깝다. 다만 발명이 쓸모를 향해 나아간다면, 창작은 쓸모와 상관없이 존재한다. 마르지 않은 흙, 아직 굳지 않은 물감처럼, 창작의 순간은 언제나 쓸모의 바깥,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창작은 현실적인 효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쓸모없음 때문에, 창작과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인간의 정신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놓인다. 사람들은 흔히 창작의 본질을 독창성이나 완성도에서 찾지만,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두 작가의 작업을 보면 더 근본적인 기준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정리되지 않은 것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붙잡아두는 능력, 즉 아직 형태가 되지 않은 감각을 마르기 전의 흙처럼 서둘러 굳히지 않고 오래 두는 능력이다.
전시의 제목 《POIESIS》는 이 오래 두는 마음에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어 포이에시스는 없던 것을 있게 만드는 일, 즉 무에서 유가 생겨나는 순간을 뜻한다. 지금은 흔히 예술이나 제작이라는 좁은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는 더 넓은 뜻이었다. 씨앗이 흙을 뚫고 나와 꽃이 되는 일도, 몸이 시간을 지나며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일도 그리스인들은 모두 포이에시스라 불렀다. 이번 전시는 완성된 작품을 통해, 그 형상이 지금 이 모습이 되기까지 지나온 길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권지영과 김소희는 서로 다른 재료를 쓰지만, 물질과 몸이 만나는 자리에서 만난다. 흙을 짓누르는 손, 화면 위를 거칠게 지나가는 붓. 두 사람의 작업 표면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물질의 흔적과 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완성도보다 만드는 과정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느껴진다. 표면은 강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언제나 연약함이 함께 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에 가깝다.
권지영은 물레를 쓰지 않는다. 손으로 직접, 조금씩 형태를 쌓아 올린다. 초기 작업에서는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둥근 형태를 반복해서 만들었고, 그 위에 실과 금속을 더해 몸에 쌓인 감각을 층층이 담아냈다. 이후 항아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는, 전통적인 항아리의 대칭과 완성 대신 자신의 몸을 기준 삼아 비대칭한 곡선을 세웠다. 쓸모없는 손잡이와 이어지지 않는 고리는 연결과 단절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형태로 보여준다. 누른 자리는 파이고, 손가락이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아, 표면은 마치 몸이 지나간 시간의 지도 같다. 최근에는 완성한 작업을 스스로 깨뜨리고 그 조각을 다시 배치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이는 완성을 거부하는 태도를 한층 밀어붙이는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도였다. 이후 작업에 나타나는 어긋난 접합과 빈 틈은 결함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가장 정직한 증거다.
같은 마음을 김소희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는 인물에서 출발하지만,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하지 않는다. 빠른 선과 서로 얽히고 번지는 색은 인물의 윤곽을 또렷하게 그리기보다, 시간과 움직임이 남긴 흔적에 가깝다. 동양적인 붓의 움직임과 유럽 표현주의 회화의 감정이 그의 화면 위에서 만나고,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하나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데, 눈매도 윤곽도 매번 조금씩 다르지만 남는 인상은 이상하게도 닮아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중국에서 보내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작업하는 그는, 어디에서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스스로를 느껴왔다고 말한다. 이 낯선 감각은 그의 화면 속 인물이 하나의 얼굴로 쉽게 고정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 인물은 때로 조각난 얼굴로, 때로 겹쳐진 선으로, 또 때로는 몸의 일부가 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도 그 너머에는 오래 살아 지혜에 이른 사람, 어떤 현인의 얼굴에 가까운 인상이 자리한다. 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를 그린 것이 아니다. 작가 안에 오래 머물던 이미지가, 그림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작업은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에 더 가깝다. 그 얼굴은 밖에서 찾아낸 것이 아니라, 다가갔다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동안 비로소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재료와 형식은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정리된 결과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과정을 믿는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다만 어떤 표현도 작가의 마음을 완전히 물질로 옮기지는 못한다. 아무리 정직하게 만들어도, 다 옮기지 못한 부분은 항상 남는다. 그리고 그 남은 자리를 채우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지금 작품 앞에 서 있는 관객이다. 전시장의 빛이 시간에 따라 흙과 물감의 표면을 조금씩 옮겨가듯, 관객은 그 표면에 남은 손과 붓의 흔적을 따라가며 작가가 다 옮기지 못한 부분을 자신의 눈으로 조용히 채운다. 이번 전시가 결국 보여주고 싶은 것은 완성된 형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형상이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자리, 없던 것이 있게 되는 그 사건이다. 관객은 바로 그 마지막 순간에 서서, 두 작가가 손끝에서 시작한 이 만듦의 자리를 함께 완성한다.
글_ 박지인
RANEE SEOUL and PS CENTER are pleased to present POIESIS, a two-person exhibition featuring Sohee Kim and Jiyoung Kwon, on view from August 22 through September 17.
POIESIS: The Unrevealed evokes the process through which what has yet to take form emerges into the world.
Bringing together Sohee Kim’s paintings and Jiyoung Kwon’s ceramics, POIESIS brings two distinct mediums together through a shared language of cre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