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ABOUT THE EXHIBITION
가장 급진적인 돌봄과 상호 의존으로 엮인 윤리적 공동체의 형상.
씨알콜렉티브는 오는 5월 14일, 듀킴의 개인전 《Sacrificium》을 개최한다.
종교 체계, 섹슈얼리티, 사도마조히즘 실천 속에서 신체가 교차하고 수행되는 방식을 탐구해 온 듀킴의 이번 전시 《Sacrificium》은 제의와 욕망의 현장을 겹쳐 놓으며 또 다른 차원의 윤리를 제안한다. 창세기의 ‘아담과 갈비뼈’ 이야기를 퀴어하게 전유해 성별 이분법과 위계를 흔들고 혼종적 신체를 탐색한 2018년의 개인전 《다육 인간》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그 신화적 서사를 급진적으로 확장한다. 이곳에서 세계의 기원은 개별자가 아닌 접목과 증식에 의해 형성된 다육적 신체이며, 이들이 서로를 관통하고 얽어매는 형상은 미적이고 윤리적인 공동체로서 도래한다.
특히 제의적 공간과 BDSM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던전이 기묘하게 겹쳐지는 이곳에서 다시 쓰이는 창세기와 새로이 구성되는 성화, 성가는 퀴어한 윤리 체계를 구성한다.¹ 이때 윤리의 첫 번째 조건은 결백하고 정제된 도덕, 규범적이고 안전한 관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데 있다. 대신에 그것은 서로의 구멍을 메우고 다발로 증식하며 쾌락과 고통, 의존과 신뢰 속에서 서로를 얽어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적 체계가 전제하는 단일한 기원과 정상 신체, 이성애 규범을 손쉽게 초과하며, 이 불온한 세계를 구성하는 구조적 조건으로 제시된다.
전시의 토대로서 『다육복음서』는 창세기를 재구성하여 대안적인 기원 서사를 구성한다. 그에 의하면, 태초에 뼈가 있었다. 빛으로 넘치는 에덴에 살던 완벽한 몸, 최초의 인간에게서 떨어져나온 갈비뼈였다.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서 바깥을 떠돌 수밖에 없었던 파문된 뼈는 어떤 구멍을 만났다고 한다.² 어둡고 깊어 끝을 알 수 없는 구멍, 잊힌 구멍, 뼈는 그곳에 자리 잡기로 한다. 구멍은 단숨에 뼈를 받아들이고, 곧바로 진득한 액체를, 진물을, 즙을 터트린다. 그것은 고통이었던가? 혹은 환희? (그 둘이 달랐던가?) 복음서의 저자 듀킴이 전하길, 탈락한 뼈와 깊은 구멍, 흘러넘치는 즙이 엉겨 붙어 다육(多肉)이 태어난다. 다육은 그 이름처럼 하나이자 다발, 여러 몸들이 뒤얽히고 겹치고 분화하는 몸. 이 몸들은 서로를 통과하고 스며들고, 끝없이 접히고 벌어진다. 그 끝에 또 다른 존재가 탄생하나니, 그것이 곧 사도들이다. 이후 그들이 어떤 형상으로 현현했는지 알고자 한다면, 〈다육복음서〉를 보라.
좁은 통로의 끝, 제단을 연상시키는 공간 양옆으로 〈모든 살이 빛으로 변할 때〉가 펼쳐진다. 마치 성화와도 같이 장중하게 자리하지만 진리와 영성을 전하는 기호로서 기능하는 그것과 달리, 이 대형 작업은 불안과 긴장을 선사한다. 규칙적으로 파이프를 쥐어 짜내는 라텍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이는 사람이 들어간 베드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 실루엣만 남기는 BDSM 배큠 플레이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이때 배큠 플레이는 신체를 결박하고 호흡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사회 규범과 위계를 극단적으로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업은 상호 의존과 돌봄의 급진적인 형식으로서 배큠 플레이를 다룬다. 서로의 상태를 정교히 감각하고 조율함으로써 쾌락에 도달하는 에세머(SMer)처럼, 완벽한 순간에 맞춰 자신의 가장 안쪽의 것을 드러내고, 긴장감을 넘어선 몰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섬세한 조율을 통해 가동되는 이 작업은 성적 행위와 지향에 대한 재현을 넘어서며, 급진적인 돌봄이자 실천, 대안적 커뮤니티와 사회적 장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³
한편, 이와 같은 실천은 〈모든 살이 빛으로 변할 때〉 중앙을 버티고 선 구조체에 이르러 또 한 번 종교적 형식을 빌려 구체적으로 소환된다. 태초의 퀴어한 몸이 창세기의 서사를 되받아쓰며 탄생했듯, 종교적 규범과 사도마조히즘적 실천, 퀴어 공동체의 윤리는 일종의 회로로 엮이며 서로를 비추거나 비춰지고, 뒤집거나 뒤집히며, 상호 참조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한때 거룩한 소리를 통해 천상과 연결될 수 있었던 파이프 오르간의 이형(異形)이다. 교회의 전통 악기로서 신성에 광채를 더하는 파이프 오르간을 닮아 거대하게 우뚝 섰으나, 그 형태도 소리도 기대를 저버린 이형. 서로에게 들러붙은 파이프, 응고된 찌꺼기, 멍이 든 표면, 녹과 얼룩의 군집. 용접으로 살을 맞댄 파이프는, 만남과 헤어짐의 연쇄 끝에 마침내 모두가 한 몸으로 얽혀 버린 퀴어 공동체를 은유한다. 동시에 이것은 상처로부터 새살을 낳고 분열해 가는 다육 식물과도 겹쳐진다. 이들은 모두 암수의 두 생식 세포가 만나 아이를 만들고 가족이 됨으로써 생산을 도모하는 신자유주의적 체계의 몸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몸이다. 기원으로서 최초의 인간 쌍이 유성 생식한 자손이 아닌 기원의 기형적 번식이자 기원을 망각한 몸들. 이 몸은 금기로부터 쾌락을, 쾌락으로부터 서로에 대한 연루를, 나아가 돌봄을 지속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폴 B. 프레시아도의 말처럼) ‘육신의 코뮤니즘(somatic communism)’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community)는 상처 난 구멍을 계속해 이어가며 숨 쉴 통로를 만든다. 이곳에는 들끓고 헐떡이며 거친 숨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Sacrificium》은 낙인찍힌 욕망이 모여든 성소이자, 가장 급진적인 돌봄과 상호 의존으로 엮인 윤리적 공동체의 형상이다. 수난을 겪은 몸과 찢어진 상처로부터 살점과 욕망이 증식해 가는 이곳. 이곳에서 하나의 신체는 열리고, 연결되며, 끝없이 거듭난다. 그 거룩한 장면들로서 〈Sacrificium - The Succulent Gospel〉이 계시하는 은총을 기쁨으로 맞이하라. 아주 오래된 윤리, 끝난 적 없는 복음이 도래할지니.
¹ BDSM은 구속, 훈육, 지배와 복종, 가학과 피학의 약어로, 다양한 도구와 행위를 동반하여 성적 지향, 신체적 쾌락과 정서적 교감을 탐구하는 실천이다. 합의와 신뢰를 전제로 하는 BDSM 플레이를 실천하는 이들을 에세머(SMer)로, 이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던전이라 부른다.
² 이 구멍은 아담의 항문이다. “사회적 장에서 제거되는 첫 번째 기관”이며, “가장 불결하고 비체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신체 부위로서 항문은 이성애 중심적 관행에 대항하는 실천적 기관으로서 힘을 갖는다. 이승준, 정유진 역(폴 B. 프레시아도), 『대항성 선언』(포이에시스, 2022), 60쪽.
³ Margot Weiss, Techniques of Pleasure: BDSM and the Circuits of Sexuality (Duke University Press, 2012), p. 11.
자료 출처: 씨알콜렉티브 제공
이미지: 씨알콜렉티브 제공
가장 급진적인 돌봄과 상호 의존으로 엮인 윤리적 공동체의 형상.
씨알콜렉티브는 오는 5월 14일, 듀킴의 개인전 《Sacrificium》을 개최한다.
종교 체계, 섹슈얼리티, 사도마조히즘 실천 속에서 신체가 교차하고 수행되는 방식을 탐구해 온 듀킴의 이번 전시 《Sacrificium》은 제의와 욕망의 현장을 겹쳐 놓으며 또 다른 차원의 윤리를 제안한다. 창세기의 ‘아담과 갈비뼈’ 이야기를 퀴어하게 전유해 성별 이분법과 위계를 흔들고 혼종적 신체를 탐색한 2018년의 개인전 《다육 인간》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그 신화적 서사를 급진적으로 확장한다. 이곳에서 세계의 기원은 개별자가 아닌 접목과 증식에 의해 형성된 다육적 신체이며, 이들이 서로를 관통하고 얽어매는 형상은 미적이고 윤리적인 공동체로서 도래한다.
특히 제의적 공간과 BDSM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던전이 기묘하게 겹쳐지는 이곳에서 다시 쓰이는 창세기와 새로이 구성되는 성화, 성가는 퀴어한 윤리 체계를 구성한다.¹ 이때 윤리의 첫 번째 조건은 결백하고 정제된 도덕, 규범적이고 안전한 관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데 있다. 대신에 그것은 서로의 구멍을 메우고 다발로 증식하며 쾌락과 고통, 의존과 신뢰 속에서 서로를 얽어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적 체계가 전제하는 단일한 기원과 정상 신체, 이성애 규범을 손쉽게 초과하며, 이 불온한 세계를 구성하는 구조적 조건으로 제시된다.
전시의 토대로서 『다육복음서』는 창세기를 재구성하여 대안적인 기원 서사를 구성한다. 그에 의하면, 태초에 뼈가 있었다. 빛으로 넘치는 에덴에 살던 완벽한 몸, 최초의 인간에게서 떨어져나온 갈비뼈였다.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서 바깥을 떠돌 수밖에 없었던 파문된 뼈는 어떤 구멍을 만났다고 한다.² 어둡고 깊어 끝을 알 수 없는 구멍, 잊힌 구멍, 뼈는 그곳에 자리 잡기로 한다. 구멍은 단숨에 뼈를 받아들이고, 곧바로 진득한 액체를, 진물을, 즙을 터트린다. 그것은 고통이었던가? 혹은 환희? (그 둘이 달랐던가?) 복음서의 저자 듀킴이 전하길, 탈락한 뼈와 깊은 구멍, 흘러넘치는 즙이 엉겨 붙어 다육(多肉)이 태어난다. 다육은 그 이름처럼 하나이자 다발, 여러 몸들이 뒤얽히고 겹치고 분화하는 몸. 이 몸들은 서로를 통과하고 스며들고, 끝없이 접히고 벌어진다. 그 끝에 또 다른 존재가 탄생하나니, 그것이 곧 사도들이다. 이후 그들이 어떤 형상으로 현현했는지 알고자 한다면, 〈다육복음서〉를 보라.
좁은 통로의 끝, 제단을 연상시키는 공간 양옆으로 〈모든 살이 빛으로 변할 때〉가 펼쳐진다. 마치 성화와도 같이 장중하게 자리하지만 진리와 영성을 전하는 기호로서 기능하는 그것과 달리, 이 대형 작업은 불안과 긴장을 선사한다. 규칙적으로 파이프를 쥐어 짜내는 라텍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이는 사람이 들어간 베드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 실루엣만 남기는 BDSM 배큠 플레이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이때 배큠 플레이는 신체를 결박하고 호흡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사회 규범과 위계를 극단적으로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업은 상호 의존과 돌봄의 급진적인 형식으로서 배큠 플레이를 다룬다. 서로의 상태를 정교히 감각하고 조율함으로써 쾌락에 도달하는 에세머(SMer)처럼, 완벽한 순간에 맞춰 자신의 가장 안쪽의 것을 드러내고, 긴장감을 넘어선 몰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섬세한 조율을 통해 가동되는 이 작업은 성적 행위와 지향에 대한 재현을 넘어서며, 급진적인 돌봄이자 실천, 대안적 커뮤니티와 사회적 장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³
한편, 이와 같은 실천은 〈모든 살이 빛으로 변할 때〉 중앙을 버티고 선 구조체에 이르러 또 한 번 종교적 형식을 빌려 구체적으로 소환된다. 태초의 퀴어한 몸이 창세기의 서사를 되받아쓰며 탄생했듯, 종교적 규범과 사도마조히즘적 실천, 퀴어 공동체의 윤리는 일종의 회로로 엮이며 서로를 비추거나 비춰지고, 뒤집거나 뒤집히며, 상호 참조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한때 거룩한 소리를 통해 천상과 연결될 수 있었던 파이프 오르간의 이형(異形)이다. 교회의 전통 악기로서 신성에 광채를 더하는 파이프 오르간을 닮아 거대하게 우뚝 섰으나, 그 형태도 소리도 기대를 저버린 이형. 서로에게 들러붙은 파이프, 응고된 찌꺼기, 멍이 든 표면, 녹과 얼룩의 군집. 용접으로 살을 맞댄 파이프는, 만남과 헤어짐의 연쇄 끝에 마침내 모두가 한 몸으로 얽혀 버린 퀴어 공동체를 은유한다. 동시에 이것은 상처로부터 새살을 낳고 분열해 가는 다육 식물과도 겹쳐진다. 이들은 모두 암수의 두 생식 세포가 만나 아이를 만들고 가족이 됨으로써 생산을 도모하는 신자유주의적 체계의 몸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몸이다. 기원으로서 최초의 인간 쌍이 유성 생식한 자손이 아닌 기원의 기형적 번식이자 기원을 망각한 몸들. 이 몸은 금기로부터 쾌락을, 쾌락으로부터 서로에 대한 연루를, 나아가 돌봄을 지속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폴 B. 프레시아도의 말처럼) ‘육신의 코뮤니즘(somatic communism)’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community)는 상처 난 구멍을 계속해 이어가며 숨 쉴 통로를 만든다. 이곳에는 들끓고 헐떡이며 거친 숨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Sacrificium》은 낙인찍힌 욕망이 모여든 성소이자, 가장 급진적인 돌봄과 상호 의존으로 엮인 윤리적 공동체의 형상이다. 수난을 겪은 몸과 찢어진 상처로부터 살점과 욕망이 증식해 가는 이곳. 이곳에서 하나의 신체는 열리고, 연결되며, 끝없이 거듭난다. 그 거룩한 장면들로서 〈Sacrificium - The Succulent Gospel〉이 계시하는 은총을 기쁨으로 맞이하라. 아주 오래된 윤리, 끝난 적 없는 복음이 도래할지니.
¹ BDSM은 구속, 훈육, 지배와 복종, 가학과 피학의 약어로, 다양한 도구와 행위를 동반하여 성적 지향, 신체적 쾌락과 정서적 교감을 탐구하는 실천이다. 합의와 신뢰를 전제로 하는 BDSM 플레이를 실천하는 이들을 에세머(SMer)로, 이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던전이라 부른다.
² 이 구멍은 아담의 항문이다. “사회적 장에서 제거되는 첫 번째 기관”이며, “가장 불결하고 비체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신체 부위로서 항문은 이성애 중심적 관행에 대항하는 실천적 기관으로서 힘을 갖는다. 이승준, 정유진 역(폴 B. 프레시아도), 『대항성 선언』(포이에시스, 2022), 60쪽.
³ Margot Weiss, Techniques of Pleasure: BDSM and the Circuits of Sexuality (Duke University Press, 2012), p. 11.
Press Release: CR Collective
Image: CR Collective